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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소설]"50년 우정 박살낸 단 한마디, 친구가 내 자식 무시하다 인생 역전당한 순간"

by lovelyldg 202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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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식도 그 모양이지."

50년을 함께한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 순간, 제 가슴에 못이 박혔습니다.

아니, 못이 아니라 칼이었습니다.

가슴을 꿰뚫고 들어와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았습니다.

가난했던 시절부터 함께 밥 나눠 먹고, 자식 낳고 키우면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친구들.

매달 첫째 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만나 소주 한잔씩 기울이며 세월을 나눴던 우리였습니다.

1975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50년 전.

우리 넷은 같은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박진수, 김철호, 이상민, 그리고 저 한동수.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까지 일했죠.

손에 기름때가 가시지 않았고, 몸에선 늘 쇳가루 냄새가 났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젊었고, 꿈이 있었고, 무엇보다 함께였으니까요.

공장 옆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병을 네 명이 나눠 마시며,

"야, 우리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매일 고기 먹자. 삼겹살 10인분씩!"

이런 허황된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박진수는 작은 철물점을 차렸고, 김철호는 택시를 몰았고, 이상민이는 작은 식당을 운영했고, 저는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평생을 보냈습니다.

누구 하나 크게 성공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았을 뿐이죠.

그래도 우리는 매달 첫째 주 토요일만큼은 반드시 만났습니다.

40년 넘게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자식들 대학 보내느라 허리가 휘고, 부모님 병원비 마련하느라 빚을 지고, IMF 때는 거의 거지꼴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모임만큼은 지켰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었으니까요.

"야, 나 요즘 진짜 힘들어. 집사람이 병원에..."

"괜찮아. 내가 좀 도와줄게. 얼마 필요해?"

이런 대화가 자연스러웠던 우리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가을쯤부터였을 겁니다.

박진수가 모임에 나오더니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야, 너희들! 오늘 내가 대박 소식 하나 알려줄게!"

우리는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봤습니다.

혹시 복권이라도 당첨됐나?

"우리 아들이 말이야, 드디어 대기업 들어갔어! 그것도 삼성전자! 그냥 삼성도 아니고 삼성전자라고!"

박진수의 목소리는 떨렸습니다.

기쁨과 자부심으로 가득했죠.

"연봉이 얼마냐면... 초봉이 5천만 원이래. 5천만 원! 우리가 평생 벌어도 모으기 힘든 돈을 애가 1년에 버는 거야!"

우리는 진심으로 축하했습니다.

"야, 진짜 대단하다! 축하한다, 진수야!"

김철호가 박진수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너희 집안 대박 났네. 진수야, 오늘 한턱 제대로 내야 되는 거 아냐?"

이상민이도 웃으며 맞장구쳤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진수야, 정말 잘됐다. 네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아들 대학 보내느라 철물점 새벽부터 열고... 이제 보상받는 거야. 축하해."

진심이었습니다.

친구가 좋아하니까 우리도 기분이 좋았으니까요.

그날 밤, 우리는 오랜만에 2차까지 갔습니다.

박진수가 기분 좋게 계속 술을 시켰고, 우리는 밤늦게까지 웃고 떠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다음 달 모임.

박진수는 또 아들 얘기를 꺼냈습니다.

"우리 애가 말이야, 벌써 팀장한테 인정받았대. 입사한 지 두 달밖에 안 됐는데 프로젝트 하나를 맡겼대."

"오, 그래? 대단한데?"

김철호가 대답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습니다.

그 다음 달.

"우리 애 말이야, 이번에 성과급 받았대. 첫 해인데도 300만 원이나 받았어. 요즘 대기업은 확실히 다르더라고."

그 다음 달.

"우리 애가 여자친구 생겼대. 그것도 같은 회사 여직원인데, 명문대 출신이고 집안도 괜찮다더라고."

매번, 매번, 매번.

모임 때마다 박진수는 아들 자랑만 했습니다.

처음엔 웃고 넘겼습니다.

친구니까요.

그런데 점점 도를 넘어섰습니다.

"요즘 젊은 애들 연봉이 진짜 어마어마해. 우리 애 동기 중에 연봉 7천 받는 애도 있대. 우리 때랑은 차원이 다르지, 뭐."

그러면서 슬쩍슬쩍 다른 친구들을 찔러댔습니다.

"김철호, 너네 큰아들은 지금 뭐 한다고 했지? 작은 회사 다닌다고 했나?"

김철호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응, 작은 IT 회사 다녀."

"IT? 요즘 IT가 대세긴 한데... 근데 작은 회사는 좀 불안하지 않나? 복지도 별로일 것 같고."

"..."

김철호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들은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야간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결혼은커녕 자기 앞가림도 힘든 상황이었죠.

다음은 이상민이 차례였습니다.

"상민아, 너네 딸은 아직 취업 못 했다며? 요즘 여자애들은 취업이 더 힘들다던데..."

이상민의 딸은 작년에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직 취업을 못 했습니다.

면접을 스무 군데 넘게 봤지만 번번이 떨어졌다고 했죠.

"...응, 아직 준비 중이야."

"아, 그래? 우리 애 회사도 수시로 채용한다던데, 소개해줄까? 물론 스펙이 좀 되어야 하긴 하지만..."

공기가 싸해졌습니다.

그날 모임은 일찍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달.

박진수는 또 아들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우리 애가 이번에 승진했대. 대리 달았어, 대리. 입사 2년 만에!"

이번엔 저를 쳐다봤습니다.

"동수야, 너네 아들은 뭐 하고 있어? 한 번도 얘기 안 하던데?"

순간, 모두의 시선이 제게 쏠렸습니다.

저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그냥 회사 다녀."

"회사? 어떤 회사? 대기업이야, 중소기업이야?"

"그냥... 회사야. 특별한 건 없어."

박진수가 비웃듯 웃었습니다.

"그냥 회사? 요즘 같은 세상에 그냥 회사 다니면 얼마나 벌겠어? 동수야, 너무 겸손한 거 아냐?"

아니었습니다.

겸손이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제 아들이 뭘 하는지 잘 몰랐으니까요.

5년 전쯤, 아들놈이 갑자기 말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하는 일 절대 다른 분들한테 말씀하지 마세요. 꼭 부탁드려요."

"왜?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하냐?"

"아니에요. 그냥... 조용히 살고 싶어서요. 아버지가 불편해지실 수도 있어요."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불편해?"

"그냥요. 제발 부탁이에요, 아버지."

아들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아들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물어볼 때마다 얼버무렸던 겁니다.

그런데 오늘.

오늘은 정말 참을 수 없었습니다.

박진수가 또 아들 자랑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수야, 솔직히 말해서 말이야. 부모가 어떻게 사느냐가 자식한테 영향을 주는 것 같아. 나는 그래도 장사를 했잖아? 돈 버는 법을 알았고. 그게 애한테도 영향을 준 것 같아."

그러더니 이어서 말했습니다.

"근데 너는... 평생 일용직 아니었어? 그러니까 애도 큰 꿈을 못 가지는 거지.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거야."

참았습니다.

친구니까, 50년을 함께한 사이니까.

그런데 박진수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네가 그러니까 네 자식도 그 모양이지."

박진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순간, 식당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습니다.

김철호와 이상민이 동시에 숨을 멈췄습니다.

저는 소주잔을 들고 있던 손이 굳어버렸습니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내 자식이... 그 모양?

50년을 함께한 친구의 입에서, 제 아들을 모욕하는 말이 나왔습니다.

박진수는 제 표정을 보더니 당황한 듯 말했습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내 말은 그러니까..."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김철호가 급히 끼어들었습니다.

"야, 박진수! 그게 무슨 말이야! 동수 아들이 어쨌다고 그런 말을 해!"

이상민이도 황급히 말했습니다.

"진수야, 그건 좀 심한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친구 자식한테..."

박진수는 변명하듯 말했습니다.

"아니, 내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그냥 동수가 너무 자식 얘기를 안 하니까, 혹시 뭐 문제라도 있나 싶어서..."

"문제?"

제 목소리가 낮게 깔렸습니다.

"내 아들한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동수야, 오해하지 마. 나는 그냥 걱정돼서 한 말이야."

"걱정?"

저는 천천히 소주잔을 내려놓았습니다.

"네가 내 아들을 걱정한다고?"

박진수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술기운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은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말을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동수야, 있잖아. 나도 네 입장을 이해해. 요즘 취업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데. 특히 너처럼... 인맥이나 그런 게 없으면 더 힘들잖아."

인맥이 없다?

저는 평생 건설 현장에서 일했습니다.

인맥? 그런 거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성실하게, 정직하게 일했을 뿐입니다.

그게 잘못된 겁니까?

박진수는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내 말은 말이야, 요즘은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거야. 나도 우리 애 취업할 때 여기저기 알아봤거든. 그게 도움이 됐고."

"그래서?"

"그래서... 너도 좀 더 적극적으로 애 취업 활동을 도와줬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냥 애한테만 맡기지 말고..."

김철호가 끼어들었습니다.

"야, 박진수! 지금 그만해! 네가 술 먹고 헛소리하는 거 같은데..."

하지만 박진수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니, 나는 친구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동수야, 솔직히 너 아들 몇 살이야? 서른 넘었지? 그 나이면 이미 결혼도 했어야 하는 나이인데, 취업도 제대로 안 되고..."

"누가 취업 안 됐다고 했어?"

제 목소리가 차갑게 식었습니다.

"뭐?"

"내가 언제 우리 아들이 취업 안 됐다고 했냐고."

박진수가 당황했습니다.

"아... 그게... 너가 회사 얘기를 안 하니까... 나는 당연히..."

"당연히 뭐?"

"......"

침묵이 흘렀습니다.

저는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진수야, 너 지금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어."

"뭔데?"

"내가 아들 얘기를 안 하는 게, 아들한테 자랑할 게 없어서라고 생각하는 거지?"

박진수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습니다.

"아... 아니..."

"맞아. 네 표정 보니까 맞네."

저는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진수야, 우리 50년 알고 지낸 사이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도 알잖아.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어?"

"그건... 그렇지..."

"내가 아들 얘기 안 하는 건, 자랑할 게 없어서가 아니야."

박진수의 눈빛이 흔들렸습니다.

"그럼... 왜?"

"아들이 부탁했거든. 자기 일 얘기 절대 하지 말라고."

"왜? 무슨 이유로?"

저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사실 저도 정확한 이유는 몰랐습니다.

5년 전, 아들이 갑자기 찾아왔을 때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 제가 부탁 하나만 드릴게요."

"뭔데?"

"제 직장 얘기, 절대 다른 분들한테 하지 마세요."

"왜? 혹시 너 이상한 데 다니냐?"

"아니에요. 정상적인 회사예요. 그냥... 저는 조용히 살고 싶어요."

"무슨 소리야? 아들이 좋은 데 다니면 아버지가 자랑하고 싶은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아들이 제 손을 꽉 잡았습니다.

"아버지, 제발요. 이건 정말 중요해요. 아버지가 불편해지실 수도 있어요."

"불편? 내가 왜?"

"사람들이 아버지를 다르게 볼 수 있어요. 진짜 아버지를 보는 게 아니라, 제 직장을 보게 될 거예요."

"그게 무슨..."

"아버지는 평생 성실하게 사셨잖아요. 땀 흘려서 돈 버시고, 정직하게 사셨잖아요. 저는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아들의 눈빛이 진지했습니다.

"근데 제 직장 때문에 사람들이 아버지를 다르게 대하면... 저는 그게 싫어요. 아버지도 싫으실 거예요."

무슨 말인지 완전히 이해는 안 됐지만, 아들의 진심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알았다. 아버지가 말 안 할게."

"고맙습니다, 아버지."

그날 이후로 저는 정말 아들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물어봐도 얼버무렸고, 친척들이 궁금해해도 "회사 다녀"라고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박진수가 제 아들을 모욕했습니다.

"그 모양"이라고 했습니다.

제 아들을, 제가 평생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을.

박진수가 다시 말했습니다.

"동수야, 내가 진짜 미안해. 내가 술 먹고 말실수 한 거야. 너 자식이 어떻든 그게 뭐가 중요해? 우리 우정이 더 중요하지."

우정?

지금 우정을 말합니까?

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진수야."

"응?"

"너 지금까지 몇 번이나 네 아들 자랑했어?"

"뭐?"

"오늘만 해도 대여섯 번은 한 것 같은데?"

박진수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그건... 나도 그냥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좋아서 자랑하는 건 이해해. 근데 왜 다른 친구들 자식은 깎아내려?"

"내가 언제..."

"김철호 아들 중소기업 다닌다고 했을 때, 네가 뭐라고 했어? 불안하지 않냐고 했잖아."

김철호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상민이 딸 취업 준비한다고 했을 때, 네가 스펙이 좀 되어야 한다고 했지?"

이상민이의 주먹이 떨렸습니다.

"그리고 나한테는 아예 '그 모양'이라고 했어."

"동수야, 그건 정말 실수였어..."

"실수?"

저는 소주잔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진수야, 너 알아? 진짜 성공한 사람은 자랑하지 않아."

"뭐?"

"진짜 성공한 사람은 다른 사람 깎아내리지도 않아."

박진수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너... 지금 나보고 성공 못 했다는 거야?"

"아니. 네 아들은 분명 잘됐어. 대기업 다니는 것도 대단한 거고."

저는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습니다.

"근데 그게 다른 사람 자식을 무시할 이유는 안 돼."

"나는 무시한 게 아니라..."

"아니, 했어. 너 분명히 했어."

공기가 차갑게 식었습니다.

김철호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동수야, 진수도 미안하다잖아. 우리 50년 친구인데... 오늘은 그냥 넘어가자."

이상민이도 거들었습니다.

"그래, 동수야. 진수도 술 먹어서 그런 거야. 진짜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닐 거야."

저는 두 친구를 바라봤습니다.

착한 친구들이었습니다.

항상 중재하려 하고, 싸움을 말리려 하는.

하지만 오늘은 안 됩니다.

오늘만큼은 넘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제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제 아들의 명예가 걸린 문제니까요.

저는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진수야, 너한테 물어볼 게 하나 있어."

"...뭔데?"

"네 아들, 삼성전자 어느 부서 다녀?"

박진수가 약간 당황한 듯 대답했습니다.

"반도체 부서야. 왜?"

"직급은?"

"대리라니까. 왜 자꾸 물어?"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대단하네. 정말 대단해."

박진수의 표정이 조금 풀렸습니다.

하지만 제 다음 말에 그의 얼굴은 다시 굳어졌습니다.

"근데 말이야, 진수야."

"...응?"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저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내 아들이 네 아들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있다면?"

박진수의 눈이 커졌습니다.

"...뭐?"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순간, 식탁 위의 공기가 완전히 멈췄습니다.

"내 아들이 네 아들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있다면?"

제 질문에 박진수의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습니다.

"하하... 동수야, 그게 무슨 소리야?"

"대답해봐. 만약에 그렇다면?"

박진수의 웃음이 점점 사라졌습니다.

그의 표정에서 당황과 의심이 교차했습니다.

"동수야... 너 지금 술 많이 먹었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김철호가 제 팔을 잡았습니다.

"동수야, 그만해. 오늘은 다들 기분 나쁜 일 있었으니까 그냥..."

저는 김철호의 손을 뿌리쳤습니다.

"철호야, 미안하지만 오늘은 안 돼."

이상민이도 끼어들었습니다.

"동수야, 진수도 미안하다고 했잖아. 우리 50년 우정이 이런 걸로 금 가면 안 되지."

50년 우정.

그렇습니다.

우리는 50년을 함께했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함께 공장 기숙사에서 자며 꿈을 이야기했던 우리.

첫 월급 받았을 때 함께 기뻐했고,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함께 축하했습니다.

IMF 때는 서로 돈을 빌려주고, 부모님 장례식 때는 서로 위로했습니다.

50년이란 세월.

그 긴 시간을 함께한 우정이, 오늘 하루 때문에 깨져야 합니까?

저는 잠시 주저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까요?

박진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겁니다.

그저 술 먹고 기분이 좋아서, 말이 좀 과했던 거겠죠.

친구니까, 이해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박진수가 다시 말했습니다.

"동수야, 내가 진짜 잘못했어. 내가 오늘 너무 우쭐댔던 것 같아. 우리 애가 잘됐다고 내가 잘난 사람처럼 굴었네."

그의 목소리에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너도 알잖아. 나도 평생 고생했어. 철물점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래서 애가 좋은 데 들어가니까... 너무 기뻐서 이성을 잃었나 봐."

저는 소주잔을 내려다봤습니다.

박진수의 말이 맞습니다.

그도 평생 고생했습니다.

새벽 5시에 철물점 문 열고, 밤 10시까지 일했던 사람입니다.

손님이 없어도 하루 종일 가게를 지켰고, 명절에도 쉬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아들 때문에 기뻐하는 걸, 제가 이해 못 할 이유가 있습니까?

김철호가 제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동수야, 우리 다 늙었어. 인생 얼마 안 남았는데, 친구들끼리 이러고 살면 안 되지."

이상민이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아. 우리가 죽고 나면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친구도 없어. 오늘 일은 그냥 잊자."

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들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는 이미 60대 중반.

건강도 예전 같지 않고, 하루하루가 소중한 나이입니다.

이런 일로 50년 우정을 깨뜨릴 필요가 있을까요?

박진수가 제 앞에 소주를 따르며 말했습니다.

"동수야, 미안해. 진짜 미안해. 내가 술 한 잔 받을게. 용서해줘."

그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50년 동안 함께한 친구가, 제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저는 손을 뻗어 소주잔을 잡으려 했습니다.

그냥 받아주고, 웃으며 넘어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박진수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그의 사과하는 표정 뒤에 숨겨진, 아주 미세한 우월감.

'내가 사과해주는 거야.'

'네가 화낼 만도 하지만, 내가 큰 사람이 되어주는 거야.'

그런 뉘앙스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건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작년부터 계속되어온 일이라는 것을.

박진수는 매 모임마다, 자신의 아들을 자랑하며 우월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우리 셋을, 자신보다 못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오늘 사과하더라도, 다음 달이면 또 똑같을 겁니다.

또 아들 자랑하고, 또 우리를 깎아내리겠죠.

그리고 우리는 또 참아야 하고, 또 이해해야 합니다.

50년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저는 천천히 소주잔에서 손을 뗐습니다.

"진수야."

"응?"

"너 진짜 궁금하지 않아?"

박진수의 눈빛이 흔들렸습니다.

"뭐가?"

"내 아들이 뭘 하는지."

"...동수야, 그건 중요하지 않아. 네 아들이 뭘 하든 우리 우정하고는 상관없잖아."

저는 쓰게 웃었습니다.

"정말? 정말 상관없어?"

"당연하지!"

"그럼 왜 아까는 '그 모양'이라고 했어?"

박진수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그건... 내가 실수로..."

"실수가 아니야."

제 목소리가 낮게 깔렸습니다.

"너 진심이었어. 내 아들이 네 아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지."

"아니야..."

"맞아. 네 얼굴에 다 써 있어."

김철호가 다급히 말했습니다.

"동수야! 제발 그만해! 오늘은 여기서 끝내자!"

하지만 저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이미 선을 넘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진수야, 너 아까 뭐라고 했지?"

"......"

"부모가 어떻게 사느냐가 자식한테 영향을 준다고 했지?"

박진수가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내가 평생 일용직으로 살아서, 내 아들도 큰 꿈을 못 가진다고 했어."

"동수야... 그건..."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지?"

"미안해..."

"아니, 미안하지 마."

저는 소주병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잔에 술을 가득 따랐습니다.

"너 말이 맞아. 환경이 정말 중요해."

박진수가 놀란 듯 저를 바라봤습니다.

"뭐?"

"부모가 어떻게 사느냐가, 자식한테 정말 큰 영향을 줘."

저는 소주잔을 들어 올렸습니다.

"나는 평생 성실하게 살았어. 거짓말 안 하고, 남 속이지 않고, 땀 흘려서 돈 벌었지."

"......"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건설 현장 가서 벽돌 나르고, 시멘트 반죽하고, 철근 날랐어."

제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한겨울에도, 한여름에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나는 일 안 쉬고 현장 나갔어."

김철호와 이상민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손에 굳은살이 박히고, 허리가 휘고, 무릎이 망가졌어. 병원 갈 시간도, 돈도 아까워서 진통제 먹으면서 일했지."

"동수야..."

김철호가 울먹였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들 대학 보냈어. 서울대는 못 보냈지만, 그래도 괜찮은 대학 보냈어."

저는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그리고 아들한테 말했지. 아버지처럼 살지 말라고. 공부해서 좋은 데 취직하라고."

"......"

"머리 써서 돈 벌라고. 아버지처럼 몸 쓰지 말라고."

박진수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그게 내가 아들한테 물려준 환경이야."

저는 빈 소주잔을 탁자에 내려놓았습니다.

"성실함. 정직함. 그리고 배움의 중요성."

"동수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박진수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근데 진수야."

"...응?"

"너는 네 아들한테 뭘 물려줬어?"

박진수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돈 버는 법? 장사하는 법? 그것도 중요하지."

저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습니다.

"근데 남을 무시하는 법도 물려줬네?"

"동수야!"

이상민이가 소리쳤습니다.

"그만해! 이제 정말 그만하자!"

하지만 저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네 아들, 회사에서도 그렇게 하겠지? 자기보다 작은 회사 다니는 사람 보면 '그 모양'이라고 생각하겠네?"

"아니야! 우리 애는 안 그래!"

박진수가 소리쳤습니다.

"우리 애는 착해! 착하고 성실하고... 남 무시 같은 거 안 해!"

"정말?"

"그래! 정말이야!"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네 아들은 착하겠지. 넌 아들 잘 키웠을 거야."

박진수의 표정이 약간 풀렸습니다.

하지만 제 다음 말에, 그의 얼굴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근데 말이야, 진수야."

"......"

"네 아들이 다니는 회사."

저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삼성전자라고 했지?"

"...그래."

"그 회사를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알아?"

박진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뭐? 당연히 삼성 그룹이지... 이재용 회장이 있고..."

"맞아. 삼성 그룹."

저는 잠시 멈췄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진수야."

저는 천천히 말을 이었습니다.

"삼성 그룹 위에 또 있어."

박진수가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뭐? 무슨 소리야? 삼성 그룹이 최상위 아니야?"

"아니."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계열사들을 총괄하는 지주회사가 있지."

"지주회사?"

김철호가 되물었습니다.

"응. 삼성물산 같은 곳. 그 위에서 전체 그룹을 관리하는 회사들 말이야."

이상민이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동수야... 너 왜 갑자기 그런 얘기를...?"

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박진수를 똑바로 바라봤습니다.

"진수야, 네 아들은 삼성전자 대리지?"

"...그래."

"연봉 5천만 원?"

"...그렇다고 했어."

"대단해. 정말 대단한 거야."

제 목소리에는 비아냥이 없었습니다.

진심이었습니다.

"요즘 청년들 취업 얼마나 힘든데. 대기업 들어간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운 거야."

박진수의 표정이 조금 풀렸습니다.

"그래... 우리 애도 정말 힘들었어. 몇 년을 준비했는지..."

"알아. 다 알아."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근데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만약에 말이야."

저는 잠시 멈췄습니다.

"만약에 네 아들 위에, 훨씬 더 높은 사람이 있다면?"

"그야 당연히 있지. 부장도 있고, 상무도 있고, 임원도 있고..."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제 목소리가 낮게 깔렸습니다.

"그 회사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정말 높은 자리 말이야."

박진수가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그건 뭐... 임원이나 회장이겠지. 근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만약에."

저는 천천히 말했습니다.

"만약에 그 자리에 내 아들이 있다면?"

순간, 식탁 위의 시간이 멈췄습니다.

박진수가 멍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봤습니다.

"뭐... 뭐라고?"

김철호와 이상민이도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동수야, 그게 무슨..."

저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몇 번의 터치 끝에, 사진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이거 봐."

화면을 그들에게 보여줬습니다.

사진 속에는 정장을 입은 제 아들이 있었습니다.

고급스러운 사무실에서, 여러 명의 임원들과 회의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게... 뭐야?"

박진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우리 아들."

"......"

"3년 전 사진이야. 아들이 실수로 보낸 거였는데, 삭제하라고 했지만 나는 몰래 저장해뒀어."

사진 속 아들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두꺼운 서류들이 쌓여 있었고, 벽면에는 대형 모니터가 여러 개 걸려 있었습니다.

"동수야... 네 아들이 어느 회사..."

이상민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저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5년 동안 지켜온 약속.

아들이 그토록 당부했던 비밀.

"아버지, 제발 아무한테도 말씀하지 마세요."

아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오늘만큼은 말해야 했습니다.

제 아들이, 제가 평생 자랑스러워한 아들이, "그 모양"이라는 모욕을 받았으니까요.

"우리 아들은..."

저는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삼성물산 전략기획실에서 일해."

"삼성물산?"

박진수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전략기획실이면..."

"응. 그룹 전체의 투자와 인수합병을 담당하는 부서야."

김철호가 입을 벌린 채 저를 바라봤습니다.

"그게... 정말이야?"

"정말이야."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들이 대학 졸업하고 바로 들어갔어. 처음엔 일반 사원이었는데, 실력을 인정받아서 빠르게 올라갔지."

"지금은... 무슨 직급인데?"

이상민이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상무."

"...뭐?"

박진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상무라고. 작년에 승진했어."

"서... 서른 중반에 상무?"

"응. 회사 역사상 최연소 상무래."

저는 휴대폰을 내려다봤습니다.

사진 속 아들의 모습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연봉은..."

저는 잠시 멈췄습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3억은 넘는다고 들었어."

"억... 3억?"

박진수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아졌습니다.

"보너스랑 스톡옵션 포함하면 5억 정도 될 거래."

식탁 위에 침묵이 흘렀습니다.

김철호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동수야... 그럼 왜 지금까지..."

"아들이 부탁했거든."

저는 쓰게 웃었습니다.

"조용히 살고 싶다고. 아버지가 불편해질까 봐 걱정된다고."

"불편하다니?"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볼까 봐 그랬대. 진짜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내 아들의 직함을 보게 될까 봐."

이상민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 그래서..."

"응. 그래서 나는 5년 동안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저는 박진수를 바라봤습니다.

그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진수야."

"......"

"네 아들, 삼성전자 반도체 부서 다닌다고 했지?"

박진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 아들이 있는 전략기획실에서 작년에 반도체 부서 구조조정 계획을 세웠어."

"...뭐?"

"물론 내 아들이 직접 한 건 아니고, 팀 전체가 한 거지만... 어쨌든 그 계획에 내 아들도 참여했대."

박진수의 손이 떨렸습니다.

"그러니까 뭐냐면..."

저는 천천히 말했습니다.

"네 아들이 다니는 부서의 예산을, 인력 규모를, 조직 구조를, 내 아들이 있는 팀에서 결정한다는 거야."

"......"

"물론 최종 결정은 회장님이 하시지만, 기획안을 만드는 건 우리 아들 팀이야."

박진수의 얼굴에서 모든 혈기가 빠져나갔습니다.

저는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아까 너 뭐라고 했지?"

"......"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지?"

박진수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부모가 어떻게 사느냐가 자식한테 영향을 준다고 했고."

"동수야... 제발..."

"맞는 말이야. 정말 맞는 말이야."

저는 소주잔을 들어 올렸습니다.

"나는 평생 성실하게 살았어. 거짓 없이, 정직하게."

"......"

"그리고 아들한테 말했지. 공부해라, 배워라, 머리 써서 살아라고."

저는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했어. 공부했고, 배웠고, 머리 써서 일하고 있어."

빈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그게 내가 물려준 환경이야."

박진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동수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내가 정말 잘못했어..."

"진수야."

저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습니다.

"나는 네가 사과하길 원하는 게 아니야."

"그럼... 뭘 원하는데...?"

"나는 네가 깨닫길 원해."

"뭘...?"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저는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네가 보기에 나는 평생 일용직으로 산 가난한 사람이었겠지."

"아니야... 나는 그런..."

"솔직해져, 진수야. 너 정말 그렇게 생각했잖아."

박진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근데 말이야."

저는 지갑을 꺼냈습니다.

"내가 가난해 보인다고 해서, 내 인생이 실패한 건 아니야."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냈습니다.

검은색 카드.

"이게 뭔지 알아?"

박진수의 눈이 커졌습니다.

"그건... 블랙카드...?"

"응. 아들이 만들어줬어. 필요한 거 있으면 쓰라고."

저는 카드를 다시 지갑에 넣었습니다.

"근데 나는 안 써. 내가 번 돈으로 사는 게 더 좋거든."

김철호와 이상민이가 말없이 저를 바라봤습니다.

"진수야, 내가 이 카드 자랑하려고 꺼낸 거 아니야."

"......"

"나는 네가 알았으면 좋겠어."

저는 카드를 호주머니에 넣으며 말했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 없다는 걸."

박진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동수야... 미안해... 내가... 내가 정말 잘못 생각했어..."

"그리고 하나 더."

저는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자식 잘됐다고 해서, 부모가 잘난 게 아니야."

그 말에 박진수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박진수가 무너졌습니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흐느꼈습니다.

"동수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60대 중반의 남자가, 50년 지기 친구 앞에서 우는 모습.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진수야."

"......"

"고개 들어봐."

박진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의 눈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네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듣고 싶은 게 아니야."

"그럼... 뭘 원하는데...?"

"나는 네가 변하길 원해."

저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습니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너 매번 모임 때마다 뭘 했어?"

박진수가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아들 자랑만 했지. 그것도 다른 친구들 기분 상하게."

"나는... 그냥 기뻐서..."

"기쁜 건 이해해. 자식 잘되면 부모가 기쁜 건 당연한 거야."

저는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습니다.

"근데 왜 다른 사람 깎아내려야 해? 왜 비교를 해야 해?"

"......"

"김철호 아들이 중소기업 다닌다고 불안하지 않냐고 물었지?"

김철호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의 주먹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이상민이 딸이 취업 못 했다고 스펙이 좀 되어야 한다고 했지?"

이상민이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리고 나한테는 '네 자식도 그 모양'이라고 했어."

박진수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진수야, 너 알아?"

"...뭘?"

"우리가 왜 50년 동안 친구로 지냈는지."

박진수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건..."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거든."

저는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김철호는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공장 들어왔지."

김철호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상민이는 집이 정말 가난했어.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였지."

이상민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나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중학교 때부터 혼자 살았어."

저는 잠시 멈췄습니다.

"그리고 너, 박진수."

"......"

"너는 집안이 몰락해서 어렸을 때 엄청 고생했잖아."

박진수가 고개를 떨어뜨렸습니다.

"너희 아버지가 사업 실패하고, 빚쟁이들이 집에 찾아와서..."

"그만..."

박진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바닥에서 시작했어."

저는 천천히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지. 돈도, 인맥도, 배경도."

"......"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어. 서로의 아픔을 알았고, 서로를 위로해줬지."

김철호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아... 우리는 그랬어..."

"근데 언제부터였을까?"

저는 박진수를 바라봤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달라진 걸까?"

박진수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대기업 들어갔다고 해서, 너까지 잘난 사람이 된 줄 알았어?"

"아니야..."

"네 아들의 성공이, 네 성공은 아니야."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네 아들은 네 아들의 노력으로 성공한 거야. 네가 아니고."

박진수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도 애를 키우느라..."

"우리 다 그래."

이상민이가 끼어들었습니다.

"나도 딸 키우느라 식당에서 밤낮없이 일했어."

김철호도 말했습니다.

"나도 아들 둘 키우느라 택시 하루 16시간씩 몰았어."

저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도 아들 대학 보내느라 건설 현장에서 주말도 없이 일했어."

"......"

"우리 모두 똑같아, 진수야."

저는 박진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습니다.

"우리 모두 자식 위해서 목숨 걸고 일했어."

박진수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왜 너만 자식 자랑할 권리가 있어?"

"...미안해..."

"왜 너만 다른 사람 자식 무시할 권리가 있어?"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고 끝나는 게 아니야."

저는 손을 거뒀습니다.

"진수야, 솔직하게 말해봐."

"...뭘?"

"너 오늘 내 아들 얘기 듣고 어떤 기분이야?"

박진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건..."

"부럽지?"

"......"

"내 아들이 네 아들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게, 기분 나쁘지?"

박진수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거짓말하지 마."

저는 차갑게 말했습니다.

"너 지금 질투하고 있잖아."

"동수야!"

김철호가 제 팔을 잡았습니다.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진수도 충분히 반성했어."

"반성?"

저는 김철호를 바라봤습니다.

"철호야, 너는 괜찮아? 진수가 네 아들 무시한 거."

김철호가 말문이 막혔습니다.

"상민이 너는?"

이상민이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너희는 참았지. 친구니까, 오래 알고 지낸 사이니까."

저는 두 친구를 바라봤습니다.

"근데 그게 옳은 거야?"

"......"

"상처받은 걸 참는 게, 진짜 우정이야?"

김철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동수야... 그럼 우리 어떻게 해야 돼?"

"솔직해져야 해."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으면, 제대로 사과해야지."

박진수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철호야, 상민아."

그는 두 친구를 바라봤습니다.

"나... 정말 미안해. 내가 너무 우쭐댔어."

"진수야..."

"너희 자식들 얘기할 때마다 나 무시하는 말 했지?"

박진수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철호야, 네 아들 중소기업 다닌다고 불안하다고 말해서 미안해."

김철호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사실 중소기업이 뭐가 나쁜 거야? 성실하게 일하면 되는 거지."

"...고마워, 진수야."

"상민아, 네 딸 취업 준비한다고 스펙 어쩌고 말해서 미안해."

이상민이가 눈물을 닦았습니다.

"사실 요즘 취업이 얼마나 힘든데. 네 딸은 포기 안 하고 계속 도전하잖아. 그게 더 대단한 거야."

"진수야..."

박진수가 다시 앉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바라봤습니다.

"동수야."

"......"

"나... 너한테 정말 용서 못 할 짓을 했어."

"......"

"네 아들을 '그 모양'이라고 한 거..."

박진수의 목소리가 완전히 떨렸습니다.

"그건... 진짜 변명의 여지가 없어."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네가 자식 얘기 안 하니까, 당연히 자랑할 게 없는 줄 알았어."

"......"

"그래서 우쭐했어. 내 아들이 대기업 다니니까, 나도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어."

박진수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근데 알고 보니 네 아들이 훨씬 대단했어. 그것도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진수야..."

"나 진짜... 쥐구멍에 숨고 싶어."

박진수가 테이블에 이마를 대고 흐느꼈습니다.

"내가... 내가 얼마나 우스운 짓을 한 거야..."

김철호가 박진수의 등을 두드렸습니다.

이상민이도 눈물을 닦으며 위로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50년 친구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게.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박진수가 변하려면, 이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저도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이 우정을 계속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끝낼 것인가.

저는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진수야."

박진수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나는 네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어."

"동수야..."

"근데 조건이 있어."

박진수의 눈빛이 흔들렸습니다.

"무슨... 조건?"

"진짜 변해야 해."

저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습니다.

"다시는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마."

"...약속할게."

"다시는 자식 자랑하면서 다른 사람 깎아내리지 마."

"...절대 안 할게."

"그리고..."

저는 잠시 멈췄습니다.

"우리 우정의 의미를 잊지 마."

박진수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는 50년을 함께했어. 가난했을 때부터, 힘들었을 때부터."

"...알아."

"그 시절을 잊지 마. 우리가 얼마나 서로에게 의지했는지."

박진수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흘렀습니다.

"잊지 않을게... 절대 잊지 않을게..."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동수야, 어디 가?"

김철호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화장실 좀."

저는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복도에 나오자,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벽에 기대어 깊은 숨을 내쉬었습니다.

힘들었습니다.

50년 친구에게 저렇게 말하는 것이.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아빠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구나."

잠시 후, 답장이 왔습니다.

"괜찮아요, 아버지. 필요하다면 말씀하셔도 돼요. 아버지가 상처받으시는 게 저는 더 싫어요."

눈물이 났습니다.

이런 아들을 둔 제가,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화장실에서 돌아왔을 때, 분위기가 조금 바뀌어 있었습니다.

박진수는 여전히 눈이 붉었지만, 조금 진정된 모습이었습니다.

김철호와 이상민이가 그를 위로하고 있었죠.

"동수야, 앉아."

이상민이가 자리를 권했습니다.

저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 침묵을 깬 건 박진수였습니다.

"동수야."

"...응?"

"너희 아들... 정말 대단하구나."

박진수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우월감이 없었습니다.

진심 어린 감탄만 있었죠.

"고맙다."

"근데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너희 아들이 왜 그렇게까지 숨기고 싶어 했을까?"

저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글쎄... 정확히는 나도 몰라."

"몰라?"

"아들이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거든. 그냥 조용히 살고 싶다고만..."

김철호가 끼어들었습니다.

"혹시 너한테 사람들이 막 들러붙을까 봐 그런 거 아닐까?"

"들러붙는다?"

"응. 돈 빌려달라거나, 취업 부탁하거나 그런 거."

이상민이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아. 요즘 그런 거 많잖아. 재벌 2세, 3세들 보면 주변에 사람들이 막 꼬이고..."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들은 그런 걸 걱정한 게 아니야."

"그럼?"

"아들이 걱정한 건..."

저는 잠시 멈췄습니다.

"나였어."

"너?"

박진수가 되물었습니다.

"응. 아들은 내가 불편해질까 봐 걱정했어."

"무슨 불편?"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볼까 봐."

저는 천천히 설명했습니다.

"아들 말이, 사람들이 진짜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내 아들의 직함을 보게 될 거래."

"아..."

"그러면 나한테 잘 보이려고 막 아첨하거나 그럴 거래."

김철호가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네."

"그래서 아들이 부탁했어.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너희 아들... 정말 착하구나."

이상민이가 감탄했습니다.

"부모를 그렇게까지 생각하다니."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그게 자랑스러워."

"뭐가?"

"아들의 직함이 아니라, 아들의 마음이."

박진수가 고개를 떨어뜨렸습니다.

"나는... 정말 바보였어."

"......"

"내 아들 직함만 보고, 그게 나인 것처럼 착각했어."

박진수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우리 아들이 대기업 다닌다고,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 된 줄 알았어."

"진수야..."

"근데 내 아들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박진수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지난주에 통화했을 때..."

그는 눈물을 참으며 말했습니다.

"아들이 그러더라고. 아빠, 회사 얘기 친구분들한테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

"왜냐고 물었더니..."

박진수의 손이 떨렸습니다.

"사람들이 아빠를 이상하게 볼 수도 있대. 허세 부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무슨 소린지 몰랐어. 난 그냥 자랑스러워서 말하는 건데 뭐가 문제냐고 생각했지."

"......"

"근데 오늘... 알았어."

박진수가 저를 바라봤습니다.

"내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는지."

김철호가 박진수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진수야, 너무 자책하지 마. 누구나 자식이 잘되면 자랑하고 싶잖아."

"하지만 나는 선을 넘었어."

박진수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자랑하는 걸 넘어서, 다른 사람을 무시했어."

이상민이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진수야, 솔직히 말하면..."

"...응?"

"나도... 좀 상처받았어."

박진수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상민아..."

"우리 딸이 취업 못 한 게, 나도 정말 마음 아픈 일이거든."

이상민이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밤마다 딸이 방에서 우는 소리 들으면,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미안해."

"면접 떨어졌다고 연락 올 때마다, 나도 같이 떨어진 것 같아."

이상민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런데 네가... 스펙이 좀 되어야 한다고 했을 때..."

"상민아, 정말 미안해..."

"그때 정말 화났어. 근데 참았지. 친구니까."

박진수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김철호도 입을 열었습니다.

"나도... 솔직히 말할게."

"철호야..."

"우리 아들, 중소기업 다니지만 정말 열심히 살아."

김철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야간 대학원 다니면서, 주말에도 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

"그런데 네가 불안하지 않냐고 했을 때, 나 정말 속상했어."

김철호가 박진수를 바라봤습니다.

"내 아들이 뭐가 불안해? 성실하게 사는데."

"철호야... 내가 정말 잘못했어."

박진수가 두 손을 모았습니다.

"나... 너희한테 진짜 용서 받을 자격 없어."

"진수야."

저는 그를 바라봤습니다.

"용서는 받는 게 아니야."

"...뭐?"

"스스로 자격을 만드는 거지."

박진수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렸어."

"......"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변해야 해."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해."

박진수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알겠어. 꼭 변할게."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 침묵을 깬 건 김철호였습니다.

"그나저나 동수야."

"응?"

"너희 아들... 정말 대단하다. 서른 중반에 상무라니..."

저는 쓰게 웃었습니다.

"뭐, 나도 자세히는 몰라. 아들이 회사 얘기 잘 안 하거든."

"그래도 자랑스럽지?"

이상민이가 물었습니다.

"당연하지."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근데 말이야..."

"뭔데?"

"내가 자랑스러운 건 아들의 직함 때문이 아니야."

세 친구가 저를 바라봤습니다.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 그게 더 자랑스러워."

"......"

"아들은 돈을 많이 벌지만, 절대 자랑하지 않아."

저는 천천히 말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지만,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아."

"......"

"그리고 부모를 생각해줘. 내가 불편해질까 봐 걱정하고."

박진수가 고개를 떨어뜨렸습니다.

"그게 진짜 성공이야."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돈 많이 버는 게 성공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성공이지."

김철호가 박수를 쳤습니다.

"맞는 말이야. 정말 맞는 말이야."

이상민이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동수야, 너희 아들 정말 잘 키웠어."

"고맙다."

박진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동수야."

"...응?"

"나... 오늘 정말 많이 배웠어."

"......"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 자식의 성공이 내 성공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박진수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진짜 성공이 뭔지."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진수야, 너도 성공한 거야."

"...뭐?"

"너도 아들 잘 키웠어. 대기업 들어갔잖아."

"하지만..."

"문제는 네가 그걸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거지."

저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이제 바로잡으면 돼."

박진수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바로잡을게."

김철호가 소주병을 들어 올렸습니다.

"자, 우리 잔 들어."

"뭐 하게?"

"화해주 마시자."

이상민이도 잔을 들었습니다.

"맞아. 오늘 일은 여기서 끝내자."

저도 잔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박진수는 주저했습니다.

"나... 자격이 있을까?"

"있어."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50년 친구야. 한 번의 실수로 끝낼 수는 없지."

"동수야..."

"대신 약속해."

"...뭘?"

"진짜 변하는 거."

박진수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약속할게. 꼭 변할게."

네 개의 소주잔이 부딪쳤습니다.

땡그랑.

50년 우정의 소리였습니다.

상처받았지만, 다시 이어가기로 한 우정.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진짜 시험은 지금부터라는 것을.

박진수가 정말 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

그건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습니다.

다시 첫째 주 토요일.

우리의 정기 모임 날이었습니다.

저는 약속 장소로 가면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박진수가 정말 변했을까?

아니면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까?

식당에 들어서자, 세 친구가 이미 와 있었습니다.

"동수야! 왔어?"

김철호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응, 늦어서 미안."

저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박진수를 슬쩍 쳐다봤습니다.

그는 조용히 앉아서, 물만 마시고 있었습니다.

예전처럼 떠들지 않았습니다.

"다들 잘 지냈어?"

이상민이가 물었습니다.

"응, 그냥 그렇지 뭐."

저는 대답했습니다.

"철호 너는?"

"나도 그냥. 요즘 손님이 좀 줄어서 택시 수입이 별로야."

"그래? 힘들겠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박진수가 먼저 말을 꺼냈을 겁니다.

자기 아들 얘기, 회사 얘기, 연봉 얘기...

하지만 오늘은 조용했습니다.

이상민이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있잖아, 너희들."

"응?"

"우리 딸 말이야..."

이상민이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취업했어!"

"진짜?"

김철호가 소리쳤습니다.

"축하한다, 상민아!"

저도 박수를 쳤습니다.

"정말 잘됐다! 어디 들어갔는데?"

"작은 광고 회사야. 대기업은 아니지만..."

이상민이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애가 정말 좋아하더라고. 자기가 하고 싶던 일이래."

"그게 제일 중요하지!"

김철호가 맞장구쳤습니다.

저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아. 돈보다 중요한 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는 거지."

그때, 박진수가 입을 열었습니다.

"상민아, 정말 축하해."

"...고마워, 진수야."

"네 딸, 정말 대단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한 게."

박진수의 목소리는 진심이었습니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잘 견뎌낸 거야."

이상민이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래... 애가 정말 힘들어했어. 근데 포기하지 않더라고."

"대단해. 요즘 청년들이 그게 제일 어려운 건데."

박진수가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저는 박진수를 바라봤습니다.

변했습니다.

정말로 변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작은 회사? 연봉은 얼마나 되는데?'

하지만 오늘은 달랐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있었습니다.

김철호가 소주를 따르며 말했습니다.

"자, 상민이 딸 취업 축하해서 한잔 하자!"

"좋지!"

네 개의 잔이 부딪쳤습니다.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예전의 그 편안한 분위기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소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날씨 얘기, 건강 얘기, 손자 손녀 얘기...

박진수는 여전히 조용했습니다.

아들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김철호가 물었습니다.

"진수야, 너희 아들은 잘 지내지?"

박진수가 잠시 망설였습니다.

"응... 잘 지내."

"요즘 회사 일은 어때?"

"글쎄... 바쁜가 봐. 전화해도 잘 안 받더라고."

박진수가 쓰게 웃었습니다.

"나도 뭐... 자주 연락 안 해. 바쁜데 방해하기 싫어서."

저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봤습니다.

예전의 박진수라면, 전화 안 받는다고 투덜거렸겠죠.

'우리 애가 얼마나 바쁜지 알아?' 이렇게 자랑처럼 말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습니다.

이상민이가 말했습니다.

"자식들 다 그래. 바쁘면 부모 신경 쓸 겨를이 없지."

"맞아. 우리도 젊었을 때 그랬잖아."

김철호가 맞장구쳤습니다.

박진수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우리도 그랬지."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때, 박진수의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어? 애한테 전화 왔네."

박진수가 일어섰습니다.

"잠깐만, 받고 올게."

그는 복도로 나갔습니다.

우리 셋은 그를 바라봤습니다.

"진수 많이 변한 것 같지?"

김철호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응. 확실히 달라졌어."

이상민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도 동의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많이 생각했나 봐."

"그래도 다행이야. 우리 우정이 깨지지 않아서."

김철호가 말했습니다.

잠시 후, 박진수가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이상했습니다.

창백했습니다.

"진수야, 무슨 일 있어?"

제가 물었습니다.

"아니... 그게..."

박진수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손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들 회사에서..."

"왜? 무슨 일인데?"

이상민이가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구조조정이 있대."

"구조조정?"

"응. 반도체 경기가 안 좋아서... 인원 감축을 한대."

박진수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우리 아들이... 명단에 올라갔대."

순간, 우리 모두 얼어붙었습니다.

"설마... 해고?"

김철호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아니, 해고는 아니고... 희망퇴직이래."

"희망퇴직?"

"응. 사실상 권고사직이지."

박진수가 고개를 떨어뜨렸습니다.

"애가... 지금 완전히 패닉 상태야."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상민이가 위로했습니다.

"진수야, 너무 걱정하지 마. 네 아들 실력 좋잖아. 다른 회사 가면 되지."

"그게..."

박진수가 쓰게 웃었습니다.

"요즘 경기가 다 안 좋대. 어디든 채용을 안 한대."

"......"

"게다가 우리 애 나이가... 이미 서른다섯이야."

박진수의 목소리가 완전히 떨렸습니다.

"이 나이에 다시 취업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김철호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괜찮아. 네 아들 똑똑하잖아. 잘 헤쳐나갈 거야."

하지만 박진수는 계속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 정말 바보였어."

"뭐?"

"지난 1년 동안... 나 뭐 했어?"

박진수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습니다.

"아들 대기업 다닌다고, 매일 자랑만 했지."

"......"

"친구들한테 잘난 척하고, 다른 사람들 무시하고..."

그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근데 지금 보니까... 그게 다 뭐였어?"

저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대기업도 영원한 게 아니었어. 언제든 잘릴 수 있는 거였어."

박진수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정말 멍청했어."

"진수야..."

"동수야."

박진수가 저를 바라봤습니다.

눈이 완전히 붉어져 있었습니다.

"너희 아들은... 괜찮을 거야."

"...뭐?"

"지주회사 임원이면... 구조조정 같은 거 없겠지?"

저는 잠시 말이 막혔습니다.

"진수야..."

"부럽다."

박진수가 쓰게 웃었습니다.

"너는 자식 걱정 안 해도 되잖아."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박진수는 변한 게 아니었습니다.

아니, 변하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남과 비교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겉모습만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진수야."

"...응?"

"내 아들도 언제든 잘릴 수 있어."

박진수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뭐?"

"임원이라고 해서 안전한 게 아니야.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지."

"......"

"회사 실적이 나쁘면, 제일 먼저 책임지는 게 임원이야."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말이야, 진수야."

"...응?"

"네 아들이 지금 힘든 건 맞아."

박진수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야."

"...무슨 뜻이야?"

"네 아들은 젊어. 서른다섯이면 아직 많이 남았어."

저는 그의 어깨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실력이 있잖아. 대기업에서 2년 넘게 일한 경력도 있고."

"하지만..."

"네 아들은 다시 일어날 수 있어."

저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니, 반드시 일어날 거야."

박진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동수야... 고마워..."

"고맙긴 뭘."

저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습니다.

"진수야, 이게 진짜 시험이야."

"...시험?"

"지난달에 너 약속했잖아. 변하겠다고."

박진수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시험이야."

"......"

"네 아들이 잘나갈 때는 겸손하기 쉬워."

저는 천천히 말했습니다.

"하지만 힘들 때도 당당할 수 있어야 진짜야."

박진수가 눈을 감았습니다.

"네 아들을 믿어줘."

"......"

"그리고 네 자신도 믿어."

저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너는 좋은 아버지야. 자식을 사랑으로 키웠잖아."

"동수야..."

"그 사랑이 네 아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거야."

김철호와 이상민이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아, 진수야. 네 아들 잘 키웠어."

"우리가 다 알잖아. 네가 얼마나 고생하면서 아들 키웠는지."

박진수가 눈물을 닦았습니다.

"고맙다, 친구들아..."

저는 소주잔을 들어 올렸습니다.

"자, 잔 들어."

"...왜?"

"네 아들의 재기를 위해서."

박진수가 떨리는 손으로 잔을 들었습니다.

"네 아들은 반드시 다시 일어날 거야."

저는 확신에 차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옆에서 지켜볼 거야."

네 개의 잔이 부딪쳤습니다.

땡그랑.

그 소리는 희망의 소리였습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박진수의 무너진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저는 휴대폰을 들고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아들아, 잠깐 물어볼 게 있어."

"네, 말씀하세요."

"너... 삼성전자 구조조정 소식 들었니?"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들었어요. 아버지는 어떻게?"

"친구 아들이 거기 다니거든."

"아..."

아들의 목소리가 무거워졌습니다.

"희망퇴직 명단에 올랐대."

"...안됐네요."

"너희 회사에서... 뭔가 도와줄 수 있는 거 없니?"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아버지."

"응?"

"저희 팀이 그 구조조정 계획을 세운 거예요."

저는 숨이 막혔습니다.

"...뭐라고?"

"반도체 부서 인력 감축... 제가 직접 보고서 작성했어요."

아들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아버지 친구분 아드님이... 제 결정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거예요."

"아들아..."

"죄송해요, 아버지. 하지만 이건 회사 전체를 위한 결정이었어요."

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알아.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

"그냥... 아버지가 친구가 걱정돼서."

"제가... 한번 알아볼게요."

"뭘?"

"그분 아드님 이력서 좀 보내주시면, 다른 계열사 자리를 알아볼게요."

"정말?"

"네. 실력 있는 분이면 충분히 기회가 있을 거예요."

저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고맙다, 아들아."

"아버지가 걱정하시는 분이니까요."

전화를 끊고 나서, 저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제 아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직함 때문이 아니라, 마음씨 때문에.

다음 날, 저는 박진수에게 전화했습니다.

"진수야, 나야."

"동수야... 어제는 고마웠어."

"아니야. 그것보다 말이야."

"응?"

"너희 아들 이력서 좀 보내줄 수 있어?"

"...이력서? 왜?"

"우리 아들이 알아봐 준대. 다른 계열사 자리."

전화기 너머로 박진수가 숨을 멈추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동수야... 진짜?"

"응. 장담은 못 하지만, 한번 알아본다고."

"동수야... 나... 나..."

박진수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내가 너한테 그렇게 나쁜 짓을 했는데... 너희 아들이 우리 애를 도와준다고?"

"친구 아들이잖아."

저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네 아들 실력 있잖아. 대기업에서 일한 경력도 있고."

"동수야... 고맙다... 정말 고맙다..."

박진수가 전화기 너머로 흐느꼈습니다.

일주일 후.

박진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동수야! 너희 아들한테 연락 왔어!"

"그래?"

"면접 보러 오래! 삼성전기에 자리가 있대!"

박진수의 목소리는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잘됐네. 면접 잘 보라고 해."

"응! 애한테 말했어! 너희 아들한테 정말 감사하다고!"

"괜찮아. 당연한 거야."

며칠 후, 또 연락이 왔습니다.

"동수야! 우리 애 합격했어!"

"진짜? 축하한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박진수가 울먹였습니다.

"너희 아들 덕분이야... 은인이야, 진짜..."

그리고 다음 달 모임.

박진수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동수야, 철호야, 상민아."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한테 할 말이 있어."

우리는 그를 바라봤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나 정말 많이 생각했어."

박진수가 천천히 말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잘못 살았는지."

"진수야..."

"아니, 들어줘."

그가 손을 들었습니다.

"나는... 자식 잘됐다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살았어."

"......"

"다른 사람들 무시하고, 친구들한테 상처 주고..."

박진수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근데 우리 아들이 힘들 때..."

그가 저를 바라봤습니다.

"동수 네가 도와줬어."

"친구니까 당연한 거지."

"아니야. 당연한 게 아니야."

박진수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가 너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었는데, 너는 우리 아들을 도와줬어."

"......"

"그게... 진짜 친구구나."

박진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나는 친구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어."

김철호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이제 알았으면 됐지, 뭐."

이상민이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아. 우리 50년 친구잖아."

박진수가 저를 똑바로 바라봤습니다.

"동수야."

"응?"

"나... 이제 진짜 알겠어."

"뭘?"

"사람의 가치는 돈이나 직함으로 매길 수 없다는 거."

박진수가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진짜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이냐는 거지."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말이야."

박진수가 세 친구를 돌아봤습니다.

"자식의 성공이 내 성공은 아니야."

"......"

"내 아들이 대기업 다닌다고 내가 잘난 건 아니었어."

그가 쓰게 웃었습니다.

"나는 그냥... 나야."

"맞아."

저는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너는 평생 성실하게 철물점 운영한 사람이야."

"......"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면서 가족 먹여 살린 사람이고."

김철호가 맞장구쳤습니다.

"그게 네 가치야, 진수야."

이상민이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 아들의 직함이 아니라, 네 삶 자체가 가치 있는 거지."

박진수가 눈물을 닦았습니다.

"고맙다, 친구들아."

"우리가 한 가족이지, 뭐."

김철호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는 소주잔을 들어 올렸습니다.

"자, 잔 들어."

"뭐 하게?"

"우리 우정을 위해서."

세 친구가 잔을 들었습니다.

"50년을 함께했고, 앞으로도 함께할 우정을 위해서."

"건배!"

네 개의 잔이 부딪쳤습니다.

땡그랑.

그 소리는 다시 시작되는 우정의 소리였습니다.

상처를 딛고, 더 깊어진 우정.

박진수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동수야, 그런데 말이야."

"응?"

"너... 우리 단톡방 나간 거 아니지?"

저는 피식 웃었습니다.

"나갈 뻔했어. 진짜로."

"...미안해."

"근데 안 나갔어."

"왜?"

"50년 우정이 그렇게 쉽게 끝날 수는 없잖아."

저는 세 친구를 바라봤습니다.

"물론 상처는 받았어. 많이 화났고."

"......"

"근데 생각해봤어."

저는 천천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함께한 50년이, 그 하루의 실수보다 더 소중하다고."

박진수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고맙다, 동수야."

"대신 약속해."

"뭘?"

"다시는 그러지 마."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무시하는 일."

"절대 안 할게."

박진수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맹세해."

"맹세한다."

그가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김철호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나저나 동수야."

"응?"

"너희 아들... 진짜 대단하더라. 진수 아들 자리 찾아주고..."

"착한 애지, 뭐."

저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그게 더 자랑스러워."

"뭐가?"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남을 도우려는 마음."

저는 세 친구를 바라봤습니다.

"그게 진짜 성공이야."

이상민이가 감탄했습니다.

"너 정말 좋은 아버지야, 동수야."

"아니야."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는 그냥... 평범한 아버지야."

"......"

"건설 현장에서 벽돌 나르고 시멘트 반죽하면서, 아들 키운 사람이야."

저는 손을 내려다봤습니다.

굳은살로 뒤덮인 손.

"이 손으로 번 돈으로 아들 대학 보냈어."

"......"

"그리고 아들한테 말했지. 성실하게 살라고, 남한테 부끄럽지 않게 살라고."

저는 세 친구를 바라봤습니다.

"우리 아들이 훌륭한 건, 내가 잘 가르쳐서가 아니야."

"그럼?"

"아들 자신의 노력이야."

저는 확신에 차서 말했습니다.

"나는 그냥... 옆에서 지켜봐 줬을 뿐이야."

박진수가 눈물을 닦았습니다.

"동수야... 나도 그렇게 할게."

"뭘?"

"우리 아들 옆에서 지켜봐 주기."

그가 다짐하듯 말했습니다.

"자랑하거나 우쭐대지 않고, 그냥... 든든한 아버지로 있을게."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게 진짜 아버지지."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들아, 고맙다. 친구 아들 도와줘서."

곧 답장이 왔습니다.

"아버지, 당연한 일이에요. 그분도 실력 있으시더라고요."

"그래도 네가 알아봐 줘서 고마워."

"아버지."

"응?"

"제가 아버지한테 배운 거 있어요."

"뭐?"

"사람은 서로 돕고 사는 거라고."

아들의 메시지를 읽으며, 눈물이 났습니다.

"아버지가 평생 그렇게 사셨잖아요."

"......"

"저도 아버지처럼 살고 싶어요."

저는 키보드를 두드렸습니다.

"아들아, 너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어.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50년 우정.

위기가 있었지만, 더 단단해졌습니다.

박진수는 변했습니다.

진짜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인연에도 정말 유통기한이 있을까?

아닙니다.

진짜 인연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상처를 주고받아도,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게 진짜 우정이니까요.

저는 단톡방을 열었습니다.

'50년 친구들'

박진수가 메시지를 올렸습니다.

"친구들아, 다음 달에는 내가 고기 쏠게. 삼겹살 10인분!"

김철호가 답했습니다.

"오! 좋지!"

이상민이도 답했습니다.

"야, 50년 만에 네가 한턱 쏘는 거 처음 아니야?"

저도 웃으며 답했습니다.

"그래, 진수야. 50년 우정 기념으로 제대로 쏴라!"

박진수가 답했습니다.

"ㅋㅋㅋ 알았어! 너희 배터지게 먹여줄게! 우리 우정, 앞으로도 쭉 가자!"

저는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작게 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연에 유통기한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유통기한이 있는 겁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면, 인연은 영원히 이어집니다.

우리의 50년 우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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